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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을 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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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른마당 조회 226회 작성일 24-04-0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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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시집 『호랑이 발자국』(창작과비평사, 2003)

댓글목록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싸우나 가면 아웅다웅 친정엄마랑 토닥거리며

서로 등밀어주는 모녀사이 부러운시선으로

눈길 멈추곤했는데,~~~~

엄마한테는 못해 드렸지만,

딸이 가까이 살다보니?

잔잔한 즐거움 나누며 살아가고 있네요


부모는 자식들에게 힘든모습 내색없이

자식걱정이 앞서는 것이 부모 마음인듯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작성일

그나마 아프신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릴수 있어서 

평생에 한으로 남지는 않겠네요~

부모님이든지,남편과 아내이든지,자식이든지~

다 때가 있는거 같습니다~지금 이순간 작은 것이라도 

해드리고 싶을때,해주고 싶을때 실천해 보는게 좋을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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