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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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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리내 조회 367회 작성일 24-01-18 11: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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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중학교 정문에서 바라다 보면

포구 건너 안산 잣밤나무의 무성한 숲이 보이고

오른쪽 밧징게 넘어가는 언덕 길 위로 다시랑이 제법 경사지게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보다 키가 반도 안 되는 

안산도 산자가 붙는데

다시랑은 산은 커녕 봉자도 안 붙여 줬답니다.

다시랑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공등산 능선이 있고 그 능선에서 남쪽 경사밑엔 지금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있는  일조량 듬뿍인 따순구미 마을이 있고 서쪽으로 따라가다  북쪽으로 꺽인 곳엔 못등이 있고

못등과 공등산과 다시랑의 호위를 받으며 움푹 내린 곳에 안골이 자리합니다.

안골은 깊은 골이라 물이 많을 듯 싶은데도 워낙 경사 진 곳이 많아

 찻 길이 집집마다 이어질 수 없고 언덕엔 물도 귀해서 겨울 가뭄엔 더 훨씬 고지대인 못등에서 물을 길어다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골에서 유일한 출구인 북쪽 그리고 다시랑에서 북쪽에 안징개와 우실이 그리고 북동쪽엔 밧징개, 남동쪽 급경사 아래에 넓고 깊은 포구 심포가 자리하고 있지요.

심포 너머 망산 때문에 다시랑은

낮아 보였을 뿐 결코 호락호락한 산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누가 뭐래도 산이었습니다.

봄 가을이면 단골 소풍지였거든요.

아래서 볼 때는 뾰족해 보이지만

거친 호흡소리 내며 정상에 오르면 너른 잔디 평지가 기다려 주고 거기에서 학부모님들 선생님들 그리고 천명 가까운 여남교 아이들이 모여 앉고 게임하고 보물 찾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 도시락으로 오곡밥에 동백 기름에 맛나게 부친 전, 삶은 계란,각종 나물, 생선찜 그리고  소풍때나 마실 수 있는 환타나 오란씨등 음료까지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개량 한복 차림인 우리 엄마도 농삿일을 쉴 수 있는 소풍날이었습니다.

나는 몸집이 작고 약하고 활동적이지를 못해서 보물 찾기나 게임으로 연필 한 자루 타 보지를 못합니다.

가끔 안타까우신지 담임 쌤이 보물찾기 종이 한 장 몰래 손에 쥐어 주셔서 겨우 받은 상품으로 엄마 얼굴의 웃음을 볼 수 있어 좋았지요.


이른 봄 주말 아직 농사 시작 전에는 이웃 아줌들과 엄마랑 바구니 챙겨서 다시랑 자락에 산나물 뜯으러 갑니다. 거기엔 자갈 밭에 두릎 나무가 많았고 등성이엔 둥글레나물, 젓가락 나물, 미역취나물,끌텅나물등 연한 새 순이 지천입니다. 나물 뜯기에 열중하다 후다닥 뛰는 꿩이나 고라니 때문에 간 떨어지는 줄 알고 갸들도 나 때문에 잠에서 깨어 놀라 도망갑니다.

서로 놀라기는 피장 파장이니 미안할거도 없었지요.

그 곳에서 이른 봄 꿩소리가 나는 참 듣기 좋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에도 꿩이 웁니다.

들고양이가 많아 도시에서 살아가기 힘들건데 이 곳 아파트 숲에서 산책하다 꿩 때문에 놀라기도 하며

꿩때문에 또 고향 생각에 빠져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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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다닐 때 내 눈엔 

옥녀봉은 봉자가 붙어 그런지

너무 멀고 높고 비바람 칠 때는 도깨비불 날라 다니는 가까이 해 볼 수 없는 산이지만 다시랑이 친근한 산의 표준이었습니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다시랑이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입니다.
나 어떻게 살아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 마음속에 이렇게 소중한 기억들이
가득 차 있으니 말이에요
봉자 산자 안 붙여주어도
그 이름 만으로도 참 예쁘게 느껴지는데
왜 다시랑이라는 이름을지었을까요...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공식 명이 다시랑이라네요.
사람들이 구전으로 전해 듣고 말하다 보니
저도 들은대로 발음하였네요.
옛날 고전소설 홍계월전에 보면
고려시대 시랑이라는 벼슬이 있었나 보지만 그 땐 사람이 못 살았을 수 있었으니
벼슬 이름은 아닌 듯 싶고
금오도 사투리에 선반 비슷한 것을
덕채 또는 시랑이라고도 하였었고요
신랑산의 다시랑 ??
ㅎㅎ 그럼 신부산은 ~~하고 생각하고는 웃습니다.

<span class="guest">생각나서</span>님의 댓글

생각나서 작성일

내외진에 있네요
도움이 될듯해서요
잼있게 잘읽었습니다

https://gumo.kr/board/bbs/board.php?bo_table=village&wr_id=2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감사합니다.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span class="guest">공명</span>님의 댓글

공명 작성일

하늘에서 선녀 네 명이 금오도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내려왔는데, 셋은 승천하였지만 한 명은 올라가지 못하고 인간과 인연을 맺게 되어 금오도에서 살게 되었다. 그 선녀의 이름은 옥녀였다.
하루는 옥녀가 바위에서 베를 짜다가 베틀의 북을 놓친 것이 유송리 앞바다의 납작섬이 되었다
옥녀봉 남쪽에 있는 봉우리는 '다시랑'이라 부르기도 하고 '신랑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로 오르지 못한 옥녀는 이 섬에 살던 총각에게 반해 사랑에 빠졌는데 화가 난 옥황상제가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남자는 다시랑 산에 바위로, 옥녀는 옥녀봉의 바위로 만들어 마주 보고만 있도록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옥녀봉 산 밑에서는 벌채를 함부로 못 하는데, 이는 옥녀의 치마를 벗기는 것이라 옥녀가 반드시 재앙을 내린다 하여 옥녀봉에서는 나무를 베지 않는다고 전해 내려온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어머나 신랑산 맞군요^^
옥녀봉 정상 옆에 서 있는 바위 있어요
그리고 옥녀봉은 늘 우거져 있어서
검은 색으로 보이고 무섭게 느껴졌었는데
그런 전설이 있었군요 .^^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다시랑
오랫만에 들어보네요
국민학교, 중학교시절 소풍장소하면 다시랑
1년에 봄소풍 가을소풍가면 한번은 꼭 소풍장소로 당첨~
참으로 많이도 다녔는데

그시절을 그리면서 작년 6월쯤 마을분들과 몇십년만에
다시랑을 다녀왔네요.
그 시절 다시랑은 온데 간데없고 그 너리디 넓던 바위도
찾지못하고 나무숲을 헤치고 마을을 내려다 보고서
기념사진 한컷씩 찍고 내려왔네요
그래도 간만에 다녀 올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가는 길이 여러갈래였는데
못동에서 가는길
내외진 마을 남면교회옆으로가는 길
안골에서 가는 길

우리는 안골에서 올라가서
내외진 남면교회쪽으로 내려 왔네요.

우리집에서 눈만뜨면 보이는 다시랑, 망산
한폭의 그림이지요
넓은 창 너머로 침대에 누워 다시 한번 쳐다보며 댓글 올리네요.
날 마다 다른 그림이지묘
오늘은 비바람때문에 온통 잿빛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옷을 갈아입는 다시랑, 망산, 내외진 앞산 넘 멋지답니다.
잼나는 어린 시절 추억의 글, 사진
질 읽었네요.
생각나서님과 공명님의 댓글도요

꿀꿀 한 날이지만
방콕하면셔 댓글 다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멋진 오후되세요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정말 다시랑은 친근한 산이지요.
안골과 못동 길은 결국 공등산 끝지점에서 만나 한 길이 되었었는데
가 본지 40년이 넘어 아마도
정상 잔디밭까지 소나무 숲이 되어
금오도의 공기를 더 맑게 정화시키고 있을테지요.
님의 집은 참 좋은 자리 잡고 있군요.
축복입니다.
우학리교회 옆에다 남향에다
우학리포구를 날마다 내려다볼 수 있으니까요.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아~~~그렇구나요
아~~~~너무 ,재미있기도하고
숲으로 우거져서 기억속에 추억들이 허하기도 하지만
위로가 됩니다
금오홈에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네요

모하동에서 바라본 옥녀봉은 신비감을 넘어서 공포감이들때도 어린시절 많았습니다
비가 오려는 날씨는 옥녀봉쪽을 보면 알수있었거든요
맨 처음 구름띠를 형성했다가 맑은 날씨로 가는길도
맨 마지막까지 구름옷을 입고 있어서요

중학교때 동네 친구들 끼리 옥녀봉 밑에서 소풍이 끝나고
의기투합에서 언능 귀가 하라는 선생님들 몰래
옥녀봉 탐방을 했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공명님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다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기억 내용이 다르군요.
전 옥녀봉 정상에는 아직 못 가봤습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겠지요?
한번 도전 해 봐야겠네요.

그 곳 기억은 아주 날씨가 궂은 캄캄한 밤에 찬물래기 인가쪽 아닌 불이 없어야 할 곳에
불이 한개에서 두개가 되었다가 세개로 그리고 다시 한개로 뭉치는 걸 본 적 있거든요
나중 류 씨성을 가진 과학쌤께서
사람이나 동물의 뼈에 흰인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무덤이나 동물 사체에서 기화된 인이 서로 부딪혀서 불빛이 약하게 나와
아주 캄캄하고 바람불 때 보이는거라고 하신 기억이 있답니다.
그 뒤로는 귀신불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만 하여튼 옥녀봉은 제게 미지의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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