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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은 빼깽이 죽을 먹어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종희 조회 394회 작성일 24-01-14 22:39

본문

멀쩡하던 정신이 날씨에 지배당한 듯 

아침부터 흐리멍덩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고 

어제 읽다만 활자를 꺼내 

한 자 한 자 눌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득해지더니 고개가 뚝 떨어졌다.

깜짝 놀라 도리도리 한 번 하고 보니

다행스럽게도 저마다 휴대폰 속에 갇혀있다


이런 상태인 나에게 들어올 세상은 

전무하다는 걸 알기에

나는 서둘러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안과 밖의 온도차가 나는 것도 아닌데

이불 속은 항상 노곤해서 나는 곧장

유서 깊은 골목을 걸어 올라간다.

자세히 보니 대만 주펀 같은 시골인데

알쏭달쏭한 길을 휘어 돌아 

길 모퉁이 벽에 걸린 

거울 속 포동이와 눈 맞춤이 

너무 선명해서 움찔, 뒤로 물러선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

걱정도 태산인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그 속에서도 나의 세계는 참 다양도 하다며 

꿈인 듯 꿈이지 않는 이 길이 왜 여기에 있는지,

나는 왜 여기 낯선 길을 헤매고 있는지,

그 원인을 찾다가 잠들기 전 켜둔 

유튜브채널 대만 역사 강의가 생각났다.


'꿈은 무의식 상태인 나' 라고

프로이트가 말해두었다지,

악몽도 내 상상 속에서 전개 되고 있었음을 

안심하다가 깨어보니 점심때가 훨씬 지났다.


"빼깽이 죽 만들려고 했는데, 

너무 오래 잤나 봐, 지금이라도 만들까?" 하니, 

우리 옆지기 고개를 끄덕인다.


나의 음식 만들기는 언제나

간단명료하고 속전속결이다.


지난번 삶아 냉동보관 해둔

팥이랑 빼깽이 넣고 끓인다.

빼깽이가 펄펄 끓는 물에 녹다가

걸쭉하게 풀리면

물 살짝 넣어 고들고들 해진 

밀가루 덩이들을 뒤적인다.


이런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눈대중인데,

나는 우리 고향말도 사랑하니까 

눈가남이라고 말해줘야지...ㅋㅋ

그리고 가남도 없이

너무 오래 뜨거우면 먹기 힘드니까

넙데기한 민들레는 그대 것,

넙데기한 제비꽃은 나의 것 해야지...


금방 식혀 먹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한 사이

입수시킨 밀가루 건더기는

참 보기도 좋게 동동 떠오른다.


좀 크다 싶은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쿡쿡 눌러 자르고 나니, 

아니 벌써 빼깽이 죽이


"나 다 되었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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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ㅎ"나 다 되었슈"~
~넙데기한 눈가남 빼깽이 죽 맛나겄당요
눈발이 오락가락 하는날
군불뗀 구들짱 아랫목에 푹 파묻혀서
빼깽이죽 한그릇에 싱건지 국물 마셔감시롱,~~~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ㅎㅎ 그 넙데기 한 가남이
항상 오버를 해서
냉장 보관된 밀폐 뚜껑 열어보니
빼깽이 요깡이 되었어요ㅎㅎ
오늘도 해피입니다~♡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오호~
빼갱이 죽을 이렇게 쑤는군요.
빼깽이죽을 맛나게 많이 먹어 보았지만
만드는 방법은 알지도 생각해 보지도 못 했네요.
애린님 덕분에 정갈스럽게 껍질 벗겨 말린
추억의 빼깽이와 빼깽이죽
반가이 맞이했습니다.
눈과 입의 호사스런 밤이네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저도 잘 모르다가
고향 어르신께 여쭈어 보았어요
크면서 몇 번 먹어보지 못했도
별미를 끌어들인 가남은 있어서
그 맛을 찾아냈는데
어디까지나 제 주관 적 맛입니다
새로운 한 주 파이팅입니다~♡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

미리 작성일

오늘은 반찬 봉사 가는 날인데
좀처럼 이불 밖은 위험한지 나가기 싫어 이러고 있고 시간은 9시30분을 향해 째깍거리네요.
난 하도 먹은 빼깽이죽 고향 나온 후 단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네요
이상하게 빼깽이 죽은 먹고 싶지도
만들어 보고 싶지도 그립지도 않은 고향 음식이 아닌가 싶어요.
대단하십니다
말려서 불려서 콩 삶아서 ~~
가장 손 많이 가는 그 죽을 그리 쉽게 만드시다니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울 친구들은 얼마나 먹고 싶을까 싶어
빼깽이 죽 만드는 방법 배워
초등 동창회 때 뒷날 커다란 솥에
빼깽이 죽 쒀 줬는데
모든 친구들은 너무 신기해하면서 두 그릇 먹는데
한 친구가 투정을 하면서
이런데 와서 무슨 빼깽이 죽이냐고
식은 밥 먹겠다고 해서 그래라 하고선
다음부터는 다시는 빼깽이 죽 안 했어요 ㅎㅎ
오늘도 활짝 피어나세요~♡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

미리 작성일

정성을 생각해서 조용히 한 그릇 비울 일이시지 애린님 많이 서운하셨겠네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그건 아니고요 ㅎ
다시는 그 거대한 죽 눌어붙을까 봐
뜨거운 불 앞에서 안 저어서 좋았고요 ㅋ
우리 고향음식이라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저는 잡식성이라 혐오식품 빼고
다 먹을 줄 아는데요.
그리고 언젠가 그 친구한테
왜 빼깽이 죽을 싫어하냐고,
지겹게 먹어서 그랬냐 물어보니
황당하게도 빼깽이 죽을
못 먹어봐서 그랬다나요 ㅎㅎ
그래서 그 맛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더니
한 번만 더 해주면 꼭 먹겠다고 했는데
버스는 이미 떠났습니다 했지요 ㅎ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우선 군침부터 한번 꼴까닥 삼키고요~~꼴까닥 ㅎㅎ
고향에 살고 있지만 먹어보기 싶지 않은 추억의 빼깽이죽
엄마와 언니가 많이도 해 주셨던 어린시절 식사요 간식이기도 한 빼깽이 죽
식사로 먹다 남은 건 중간에 간식으로 또 한번 먹고 또 먹고
지금은 쌀이 흔해서 쌀가루로 풀어서 썼는데 쌀 귀할때라 밀가루를 버물 버물 풀어서
넣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난 지금도 개인적으로 밀가루를 넣는게 훨 맛난
팥, 무강콩, 돈부콩, 갖가지 콩을 넣어 만든 빼깽이죽
어느 한 날 동네 식당에서 저녁 먹자는 초대를 받아
식당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혼자 오늘 먹을 메뉴를 상상해 보았지요,
우럭매운탕일까? 아니 오리불고기? 삼겹살 주려나?
아니 광어회를 주려나?
혼자서 부지런지 메뉴를 상상하며 초대받은 식당으로 향했는데
왠걸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한 빼깽이 죽
몇년동안 먹어보지 못한 빼깽이 죽
20명가량 초대손님들 반응이
이 얼마만에 먹어본 빼깽이 죽이냐며 다들 한그릇 두그릇 뚝딱
빼깽이 죽과 함께 넣어서 먹으라며 설탕을 한 사발씩 옆에 두고
사람마다 식성이 다른지라 몇숱깔을 듬뿍 넣는사람 가지각색
허나 그 중에 한두명은 실망의 눈빛
어렸을때 하도 많이 먹어서 지금도 고구마와 빼깽이 죽이 싫다며 밥을 달라고~~
그럴수도 있겠구나 이해가 가는 상황

실은 그 중에 울 남편도 한사람
어렸을때 주식으로 많이 먹어 질린다며 지금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
그래도 그 날 맛있게 먹었는데
애린님의 빼깽이 죽이 유독 맛있게 보이네요
눈으로 잘 먹고 갑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ㅎㅎ 그러셨군요ㅎ
뭔가 아쉽다 했더니
무강콩 돈부콩이 안 들어갔네요.
저도 쌀가루 건더기는 어색하고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먹어서 익숙한 밀가루가 최고지요.
고구마 썰어 베란다에서 말리면서
오다가다 집어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재미있는 답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span class="guest">산적두목</span>님의 댓글

산적두목 작성일

배달도 되나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빼깽이 죽 방금 끓여 먹는 그 맛,
도착할 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알아내시면
내일이라도 당장 보내드릴게요 ㅎ
딱 일 인분 재료 아껴두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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