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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에 가면 뵈올까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리내 조회 774회 작성일 23-11-29 11:26

본문

지는 햇빛과 길의 끝이 만나는 곳에

부모님 산소가 있습니다.

저 산소에 모시기 전엔

앞 산과 뒷동산에 늘 베어 주고 

소 염소와 아이들이 놀아 주어

잔디로 폭신하게 깔려 있어

축구든 피구든 가이산이든

뭐든 할 수 있었고

빼깽이를 말리기도 하였답니다.

아침 일찍 뒷동산 가면 

일출과 소리도서 자고 여수가는 신양호도

훤히 보이고 

앞 동산에는 

멀리 소리도와 나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석양이 장관이었지요.


나는 안 먹었지만

내 동생이 나에게 자랑 삼아 

이쪽 뒷 집 형과 저쪽 형이랑

소 먹이다가 개구리 잡아서 불 피워

구어 먹어 보았는데 맛이 좋았답니다.

전 저 미개인들 ~~물론 맘속 생각으로요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어요^^


지금은 그 곳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서

내 키 두배는 되어 앞 풍경을 가려서

옛날에 아이들 웃음 소리랑 소 응가등도

자취를 감추었더군요.

아마도 나무 아래 넓적 비렁을 찾아내어

맨 살을 살펴보면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오빠들의

필체로 새긴 글씨들이 보일겁니다.

소 먹이며 심심하면 

비렁에 뽀족한 돌 주워들고 

글들을 새겼거든요.

그리고 잔디밭과 숲이 만나는 지점에

아기 때 죽은 울 아부지 동생

독담불이 무서워  그 근처에 지천으로

검게 익은 정금도 삐비도 맹감도

절대 절대 따먹으러 가지 않았답니다.

동백 꽃물도 받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동백도 엄청 그 곳엔 탐스럽게

열렸었거든요.

봄이면 인동초 꽃을 따서 말려 팔면

학생저금 통장에 액수가 느는데도

거기서는 따지 않았답니다.


산 너머 부잣집 산에는 소나무가 많고

땅에 돌멩이가 적어서 가리도 많고

갈퀴로 긁기도 편한데

문제는 키가 껑충하게 크시고 

어깨가 살짝 굽으시고 길쭉한 얼굴에

볼이 홀쭉하셔서 광대뼈가 조금 나와

보이는 그 댁 할아버지께서

늘 산을 지키십니다.

친구 둘 합 셋이서 둥우리 짊어지고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낮으막한 경계 돌담을 넘어 서는 순간

우리의 모험은 시작 된거지요.


이 어르신 숨어서 지켜보고 계신 

모양입니다.

하도 가리가 많아 행복하게 

둥우리 밟아가며 가득 긁어 담고

짊어 지려는 순간

마징가 젯트처럼 짠 하고 나타나시네요

우린 혼비백산 그래도 가리 둥우리는

짊어지고 반대 내리막으로 내 달렸지요.

뛰다보니 가리는 다 튕겨져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빈 둥우리만 

남긴채 언덕 아래 낮작 수그리 하고 

있었지만 머리만 숨었지 

짋어진 둥우리는 안 수그리~~ㅜㅜ

우리는 잡혀 사라진 가리 대신

빈  둥우리와 갈퀴 다 뺏기고

빈 손으로 셋이 죄인 되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언저리 맴돌다가

아부지께 이실직고


나중 그 어르신께서 웃으시며

둥우리 갈퀴 다 돌려 주셨다네요.


얼마 후 해가 지고 

그 분들 뵈올 땐 그 때 못 드린

감사 인사 드려야겠습니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정말 고마운 할아버지네요
이미 보물같은 마음
깊이 간직하고 계시며
너털웃음으로 마중할 것 같습니다.

반전의 묘미 속에
가리나무 시절로 돌아갑니다.

참 많은 이야기가
세월의 덤불 속에 숨어 있다가
그 자리를 기억해 주기만 하면
이렇게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간지럽히네요

저도 친구랑 가리나무하러 가긴 했는데
친구처럼 많이 하지도 못했으면서
머리에 이고 올 때 머리가 따가워서
친구 따라 강남 간 거 엄청 후회하고
다시는 안 갔어요 ㅎㅎ
뭐 하나 야무진 구석이 있어야
우리 엄마가 좀 편했을 텐데요.

그래도 오늘은 그 미량의 경험 덕분에
미리내님 글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눈이 날리네요
따뜻한 오후 시 간 보내세요~^

<span class="guest">미리내</span>님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여기 추운 지방이라
영하 10도 이하로 수은주가 내려가면
감나무가 못 견딜 듯 하여
수도관 동파 방지하는 거로
감나무 사과나무 주 기둥나무만 감싸 주고
있는데 눈발이 날리네요
맨발로 땅과 접지하며 했더니 발이 시려서
훌훌 대충 털고 발 씻고 삼실로
들어왔는데 언 발이 녹느라
그질근질^^
그 사이 폰 들고 이러고 쉽니다.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나도 감사주세요.
나도 감나무인뎅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 작성일

그렇군
감나무가 오셨군.
나중 직접 허그해주갓스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난 세상이 왜 다 재미있었을까요?
나도 어렸을 때 가래 하러 몇 번 다닌적이 있었는데 너무 신나고 재밌었어요.
엄마 언니랑 이산 저산 다니며 소나무 아래 가래를 끍어 산더미 처럼 쌓아 놓고
이 많은 걸 어떻게 가져가나 싶지만
발등 위로 차곡차곡 깍지를 쳐서 넓적하게 네모판을 만들고 그판을 겹겹이 쌓아 올리면 마술처럼
산더미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결국 네모난 가래 둥지만 세개 남았지요.
가래둥지를 턱이 높은 곳에 세워서 머리에 이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면
그가래 세둥지가 장작태우는 불쏘시개로 한동안은 잘 버텨줬었지요.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 작성일

그걸 산내키 두줄 펴 묶어서 머리에 이고
집 뒤안 비 안 맞는 곳에 차곡차곡 지붕 닿게 쌓아 두고 1년내내 불쏘시게 했지요.
우리 산은 하도 긁어 산에 흙이 보이면
그만 긁자 산에 피나것다 했지요.

<span class="guest">남사</span>님의 댓글

남사 작성일

무슨 추억이 그리도 많다요?
하여튼 그 좁은 곳에서 별의 별 일을 다하며 살았었네요.
우리만 힘들게 사는 줄 알았더니 다들 비슷비슷하였네요.
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건데 그 시절에서는 예의범절과 지켜할 법도가 정확해서
항상 그걸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았지요.
잼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미리내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 때는 그 일이 우주였지요
생각 난 김에 그 때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기온이 영하6도인데 퇴근 하려 걷 옷 챙기다
전화 받았다는데 퇴근 미루고
그 때 얘기하며 둘이 또 깔깔 웃었네요.

오아시스님의 댓글

오아시스 작성일

독담불도 무서웠고 가묘로 만들어서 돌로 덥고
지푸라기 나무로 엮어서 덥고
몇년뒤 이장했던 무덤이 ('채빈'이라도 불렀던것 같기도 하고)무서워서
지름길을 놔두고도 빙빙돌아서 다녔던 기억이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때는 겁나게 공포스러웠어요
미리내성 표현력 짱입니다~~~그 시절로 돌아갔다 오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미리내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초분 또는 최빈??
정말 무서웠지요
유골만 남으면 한식에 부부 합장하려고
임시 가묘를 만들었다가 이장하면 아래 편편하게 물 잘 빠지게 돌로 다져진 그 흔적도 저는
무서워 돌아 다녔네요.
외가 심부름 가느라 공동묘지 지날 때
그 한 가운데
길 왼쪽엔 좀 자라서 죽은 아이 독담불이 엄청 크게 있었는데 듬성듬성 구멍으로
이불천이 보였는데 지날 때마다 그 쯤이면 막 내달렸지요.
어느 때 공동 묘지로 학교 소풍을 갔는데
미알스런 남학생들이 독담불에서 아기 유골을 꺼내들고 나오다가 학부모로 따라온 무덤주인 엄마께서 보시고 울고 난리가 났었던 기억도 있네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세상에...
아무리 철없어도
이건 너무 아니에요 ㅠ

미리내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어린 우리도 그렇게 생각 들었어요.
그러니 지금까지 기억나지요
하지만 공동묘지로 소풍장소 잡은 쌤들도 좀 ^^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오랫만에
뒷산에 솔가래 긁으로 가야 긋당 ㅎㅎ
내마음은 어느새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이되어
부지런히 가래를 긁고 있네요

겨울 방학때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뒷 날이면 무조건 갈퀴와 새끼 줄을 가지고 집뒷산에 오릅니다.
밤사이 바람에 노란 솔가래가 많이 떨어져 폭신하게 바닥을 다 덮어 미끄럼도 한번씩 타 내려오고

이러날은 수지 맞는 날
한다발 두 다발 많이도 긁어 모아 다 가져 오지도 못하고
아부지를 부릅니다.
아부지는 감탄을 합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많이 긁었다고
그런 칭찬이 좋아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더 열심히 긁어봅니다.

옛날에는 우리집산은 너무 멀어서 가까운 남의집 산에 가서 솔방울, 끌텅, 솔가지등 많이 자주 다니다
주인의 고함소리에 도망도 많이 다녔는데
미리네님도 그랬었군요.
그래도 그때는 왜 그리 키득 거리면서 재미 있었던지
그런 시절은 오지 않겠지요

지난해에 뒷산에 올라가 보니 솔가래가 수십년이 되어
썩히고 썩혀서 밭에 거름으로 쓰려고 몇포대 담아 왔는데~~

덕분에
옛 추억 꺼내보는 시간도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미리내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내 작성일

친구랑 통화중에 그러네요.
잘 안 따라 나서던 내가 그날 따라 갔었다네요.
그 뒤로 두번 다시 남의 산에 나무하러
안 갔답니다. 옛날엔 좀 고지식하고 겁이 많았었나 봐요.ㅎ
나무해다가 군불 뗄 방이 있나보군요.
불뗀 온돌방에 뜨뜻하게 노곤 노곤
찜질좀 하면 좋겠구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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