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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듬이 저수지와 엄마의 소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개 조회 711회 작성일 23-08-18 18:26

본문

태풍 6호 '카눈'이 비바람을 몰고와 설치는 날에 

엄마를 모시고 친정 식구들의 모임이 섬에서 있었다.

예전 매미가 지나가며 논과 밭을 휩쓸면서 농작물 피해 뿐만 아니라 

우리집 지붕까지 날려버려 피해가 심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 카눈도 가슴졸이며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는데

다행이 금오도는 큰 피해 없이 지나 간것 같다.


장씨네 식구들의 모임에는 언제나 엄마가 주인공이시다

집안일을 끝내고 자유로운 시간이 되면 

엄마의 소리가 자리를 잡는다.

엄마의 소리 주변으로 온식구가 하나둘 모여 든다

오늘도 연로한 엄마는 장구체를 잡으시고 한 소절을 하신다.


엄마의 소리는 힘도 빠지고 소리도 둔탁 하지만

역시 울엄마는 소리꾼이시다

유명한 소리선생님들께서 엄마의 소리를 들어 보시고

소리선생이 누구시냐고 물어 보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엄마는 당당하게

"나는 소리선생 없이 혼자 소리를 했소"

시대를 잘 타고 나셨드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딸들과 사위들이 장구에 소리값을 얹어드리면

엄마의 소리는 장구 소리와 화음을 맞추며 신명나게 한바탕 돌아 간다.


내 어릴적 초포에는 상수도 시설이 있었다.

지당 밑에다 물탱크를 만들어 가가호호 수도관을 설치하여 

식수 공급을 받고 있었으나 

가뭄이 시작되면 공급 받던 수도 물이 자동으로 끊기는 바람에 

이웃 우물이 있는 집으로 물 동냥을 다니곤 했다


어느날, 어듬이에 저수지를 만든다고 했다

가뭄에도 끄덕없는 물공급이 원활한 저수지를 만들어 식수 뿐만 아니라

농업용수로도 용이 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규모가 있는 저수지였다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선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 되었는데

울엄마도 젖먹이 어린 동생을 두고 부역에 동참 하게 되었다


젖먹이 동생을 업고 시간마다 어듬이 저수지 공사장까지

하루에 서너번을 다니는것이 쉽지 않았으나

배고파 우는 동생을 나몰라라 할 수 없어 

시간만 되면 동생을 업고 삼거리를 지나 어듬이 공사장 까지 다니게 되었다.

국민학교 지나 삼거리에 들어서면

'어여루 방아야~ 어여루 방아야~

멀리서도 엄마의 소리가 들린다.

어느날은 동생을 업고 가다 졸음이 심하게 와서 농수로에 빠져서

큰일 날뻔 한적도 있었다.


엄마는 저수지 공사에서 노동가를 부르는 앞소리꾼이 셨다

저수지 뚝을 붉은 황토흙으로 메꾸고 다지는 작업이였는데 

원통으로 된 나무를 어른 네명이서 끈으로 된 귀퉁이를 잡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작업을 하고 계셨다

엄마가 선창을 하시면 나머지 분들이 따라서 노동가를 부르셨다

넓고 긴 저수지 뚝이 모양새을 잡을때 까지 동생을 업고 기다리다

휴식시간이 되면 젖을 먹여서 집으로 돌아 오곤했다.


그때 엄마의 소리값은 한달 기준 밀가루 4포 였으며

다른 분들의 부역값은 밀가루 3포였다고 한다.

국민학생들도 동원되어 부역을 했는데

큰언니도 모래 양푼이를 이고 날랐으며

초포에서 모래를 담아 저수지까지 이고 가는데 삼거리 국민학교앞에서 

한번씩 쉬어가는 어린이들에겐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부역의 대가는 표를 줘서 모으면 밀가루로 교환 했다고 한다.


고향을 방문 했을때 금오도 수원지를 둘러 보았다.

제방댐을 채운 깊고 깊은물은 푸르다 못해 검푸르고 있었다

서슬퍼런 기운에 현기증이 일어 났다

내 어릴적 작은 아이의 기억 이지만

엄마의 소리가 짙푸른 수면위로 잔잔하게 흐르는 듯 하다.

1999년 착공하여 2003년 준공되어 금오도와 안도 주민들의 식수와 용수로 풍족하게 

사용되고 있는 금오도수원지의 시초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던 것이였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지난 휴가 때 초포 가는 길,
울 오빠는 상수원에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괜히 죄송스러워 결국 도착하지 못했네요.

정말 경험하지 않았다면 흩어지고 말
귀한 진실들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학교 학교 행사 때면 단상에 올라
구성지게 창을 하시던 선배 언니가 있었는데요
그분이 안개님 동생분이라는 것을
고향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되었지요.

흘러가고 흘러오는 역사는
마음 머문 곳에서부터 이어지고
빛나고 있음을 많은 분들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다음 고향 방문때 수원지 한번 둘러 보세요
신비스럽기까지 하답니다
어디서 저런 물이 유입되어 가득 채우고 있을까
정말 용이라도 승천 할것 같아요~~~
ㅎㅎ
작가님께서 가슴 두근거림으로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안개님 글 가슴 뭉클하게 잘 읽었네요.
어여루 방아야~
새삼 저수지 공사 현장이 떠오름니다.
난 아버지 점심 때문에 얼핏 한 두번 가 보았지만
넓게 펼쳐진 황토빛 공사장과 어른들의 구성진
노동가가 아직도 귓가에 흐미하게 들리는 듯 하네요.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감나무님 붉은황토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지요
나무로 만든 원통 방아로 노래를 부르며 다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친구 아버님도 그때 그현장에 계셨구나~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ㅋㅋ
그때 우리 아버지 뿐만 아니라
홈지기 아버님도 함께 였지요.
커다란 롤러 같은 것을 굴리며
우리 동네 남녀노소가 다 합심해서 이뤄낸 걸 작품이지요.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앗 감나무 친구님 기억력이 더 또렷하네~
황토흙을 뚝방에 갔다 부으면
커다란 롤러를 굴리며 평평하게 한다음 방아를 찧기 시작했으니까요.
요즘은 기계로 작업을 하는데
그때 그당시는 그무거운 쇠롤러를 수동으로 돌렸네요.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친정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안개님이 부럼부럼
타고나신 엄마의 소리 안개님이 엄마를 닮으셨나?

봄에 어드미 저수지에 운동다녀 왔는데
가뭄이 극심 해도 저수지 물은 벙벙하니 금오열도를
먹여 살리는 생명수지요

엄마의 소리 오래오래 간직하세요
굿밤^~^

안개님의 댓글의 댓글

안개 작성일

친정엄마 소리는 흉내도 못 내고
감히 낼 수조차도 없다요.
외모도 아부지 쪽이고
성격도 그런것 같고~~ㅎㅎ
엄마소리 응원 감사해요.
친구님도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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