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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여든의 나에게 서른의 내가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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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백꽃 조회 954회 작성일 23-08-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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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80년 인생은 어땠니? 어느 날 30대의 내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 난 육 남매를 낳고 기르며 행복하게 잘 산 것 같아.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바삐 산 것 같은데 벌써 50년이 훌쩍 지났네.

오랜만에 딸이 건네준 <금오도>를 읽다가 지나간 50년을 반추하게 되었단다. 읽는 내내 내가 살아온 발자욱을 보는 듯 젊은 나의 모습이 겹치니 신기하기도 하구만.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바다는 우리부부의 생업의 주 무대였다.

바다는 내가 몸을 움직인 만큼 수입을 보장해 주었고 그것으로 육 남매를 키웠다.

내 고향 완도는 금오도만큼 비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태풍이 올 때면 섬에 들어가는 배들은 항구에서 정박하며 강제 휴식에 들어갔다. 설령 그날이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추석이나 설이라 할지라도.

서울, 부산 인천 경기에서 부모 형제를 만나겠다고 선물 보따리를 한가득 들고 해남을 거쳐 완도읍까지 왔더라고 아직 끝이 아니다. 금오도 사람들이 여수까지 왔다고 고향에 다 온 것이 아니듯이.

<금오도>의 감상문을 쓸까 말까 고민한 것이 벌써 반년이 지났다. 3, 80살 생일 선물로 받았으니 말이다. 모든 것을 집에서 만들어 해결하던 시절, 명절이면 며칠 전부터 준비에 부산했다. 조청 만들랴 인절미 만들랴 떡국 만들랴 동네 굴뚝에서는 떡하느라 김이 모락모락 났고 방앗간에서는 떡살 빼는 김이 부지런히 열기를 토해내곤 했다.

<내 어릴 적 설을 사나흘 남겨둔 이맘때면 거의 집집마다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조청을 달이느라 굴뚝에 연기가 가득 피어올랐다. 설이 다가오면 조청도 해야 하고 떡도 만들고 고기도 찌고 군불도 때야 하기 때문에 겨우내 지게 지고 산에 올라 장작을 해 날라야 했다. 울 할머니 조청 만드는 걸 지켜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추운 부엌에 드나들며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설날의 단상 중-여기가 완도인지 금오도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는 게 비슷하다.

    

자식들이 안부 전화를 하면 <금오도> 책을 읽어준다.

그러면 어머니! 읽어준 그 대목, 우리 키울 때랑 너무 똑같아요 하면서 웃는다.

<금오도>의 구절구절이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말해주는 것 같아 고맙고 자식들과 대화거리를 만들어서 얘기꽃을 피우게 해주니 이 또한 고맙다.

50년 전인데 어제인 듯 싶다.

긴 듯한데 찰나고 찰나 인 듯한데 긴 세월이었다.

풋고추 빨간 고추 갈아 열무김치 담그고 호박 된장국에 보리밥을 말아 먹어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멸치어장을 하고 농사일도 하면서 육 남매를 학교에 보냈고 이제는 자기 몫을 잘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이 가슴에 훈장처럼 자랑스럽다.

    

<뽈락은 용왕님이 허락하신 바다의 선물>이라는 걸 보니 금오도의 대표 어류인 듯싶다. 완도는 뽈락보다는 우럭이 더 많이 잡혔고 겨울에는 간재미와 붉은 돔이었다. 도마 끝에서 뼈째 먹는 맛은 뽈락이나 간재미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고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굵은 소금 솔솔 뿌려 우럭을 구울 때면 온 동네 개가 킁킁거리며 평상 앞으로 몰려왔다. 눈 멀끔멀끔 뜨고 쳐다보는 개와 눈이 마주치면 아직 살이 붙어 먹을만한 우럭을 나눠주곤 했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고구마는 중요한 구황작물이었다. 종자 고구마를 심어놓으면 고구마순이 나왔고 그것을 끊어 심으면 고구마가 되었다. 금오도에서 고구마 빼갱이를 만들어 가계수입을 불렸듯이 내가 사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마순은 나물로도 만들어 먹었고 고구마는 삶아 먹고 말려서도 먹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해마다 여름만 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내 어릴 적 그곳 청성머들에서 수영하고 자맥질하고 고둥을 잡고 청각도 뜯었다. 한낮이면 희고 검고 파란 몽돌들이 햇볕에 반짝이고 또한 뜨겁게 달궈져 발바닥이 따가워 잘 걷지도 못했다. 물속에서 나오면 몽돌밭이 너무 뜨거워 바닷물을 한 아름 뜯어 와서 깔고 앉곤 했다. 수경을 쓰고 자맥질해 둘러보면 눈앞에 가득 펼쳐진 그 환상적인 물속 풍경!

물속 둥그스런 바윗돌마다 고둥과 꾸적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홍합과 고대미, 전복, 배말, 굴통 우렁쉥이도 참 많았다.>

어제 딸에게 읽어준 대목이다. 이제 책을 덮을 시간이 다 되었다. 금오도를 읽으면서 30대의 내가 80대인 나를 안아주며 토닥거린다.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어. 배고픈 시절이었네, 그래도 호박잎 데쳐 된장에 싸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구나. 막 잡은 간재미를 먹겠다고 도마 끝에 옹기 종기 모여 앉은 내 새끼들이 눈에 보이네. 너는 참 열심히 살았어. 고생했다. 그래도 성공한 인생이었구나. 책을 읽는 내내 서른의 나와 여든의 내가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30대 울 엄마 품 냄새를 찾던 어린 날들이 생각나고
60대 울 엄마에게 온전히 듣지 못한 말씀이 아쉽고
80대 울 엄마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서럽다고
터벅터벅 빠져나온 골목에서
문득 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지우지 못한 멍울 자국은
정작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었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야간열차를 타고 객선을 타고 종선을 타고
밤새 먼 길을 내려가는 동안
조청을 고시고 쑥떡을 만드시며
자식들의 무사귀환을 비느라 밤을 새운
울 엄마 모습이 그려져 뭉클했습니다

글의 흐름이 매끄럽고 싱싱하게 이어져
몰입에서 쉽게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귀한 글 풀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멋지게 살아내신 뒤안 길도
기다리고 싶어집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30대인 내가 80대인 나를 토닥거리며 말을 건넨다

동백꽃이 피고지고님
알콩달콩  따뜻한 삶이 눈에 와 닿는 듯 합니다
가슴에 찐하게 와 닿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동향은 아니어도 같은 시대  같은 아픔으로 한세상을 살아 왔으니 우리는 한 고향이나 진배 없습니다.
이렇게 찰라의 순간에  함께 만난 것도 큰 기쁨입니다.
완도의 이야기 더 많이 들어보고 싶고
풀어주신 이야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동백꽃의 단아함과 붉은 기운이
글을 읽는 동안 동백꽃님의 삶속에 풀어 주셔서 감동이였습니다.
전복집 세째따님께서 다녀 가신뒤
언제 오실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고운글 처럼 섬세한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고 양육하신 우리들의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팔십평생을 살아오시면서
삶의 무게가 때론 버거웠을  그래도 바다에서
논밭에서 자급자족했던  시절
많은 자녀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고
힘겹다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어머님의 자리를 끗끗이 지키셨기에  지금의 자녀들이 우리네 부모님의 위대함에  자동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지금은 한명도 버거워 키우기 힘들다는 세대들~
부모님은 굶으셔도 새끼들의 입속에 넣어주는 간재미회도
풍족하지 않으셨던 삶 속에서도 행복하셨던 동백꽃님의 남은 삶 역시  예쁜동백꽃 처럼 행복 하고 건강하세요^~^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동백꽃님
살아온 발자취를 되뇌어 주심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이달의 추천작으로 선정되셨던데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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