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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섬, 그 기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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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난숙 조회 698회 작성일 23-02-2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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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유년 시절은 나에게 시린 통증으로 남아있다. 회진항에서 배를 타면 1시간 40분여만에 가족이 있는 작은 섬에 도착했다. 낯선 배 안, 혼자라는 불안감. 깊고도 푸르렀던 바다의 공포. 채 며칠을 엄마 품에 살다 할아버지가 계신 뭍으로 나올 적이면 못내 서운해 울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불과 8~9살의 어린 나에겐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그 자체가 슬픔이었다. 

 짧았던 만남 속엔 엄마와 함께했던 많은 기억이 있는데 금오도에는 내 어릴 적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억이 서려 있다. 양동이를 들고 기다리면, 엄마는 어느새 바닷가 바위틈을 뒤져 나의 작은 팔뚝만 한 해삼을 가득 담으셨고, 고둥이며, 배말, 굴 같은 해산물을 들지도 못할 만큼 잡으시곤 하셨다. 

 섬의 특성상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가을이면 빼깽이를 썰어 말리던 기억과 팥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 먹었던 기억도 있다. 바위가 많은 계곡에는 까만 정금이 지천이었고, 어린 시절 맛있는 군것질거리가 가득했다. 잔디 뿌리를 파먹으면 달큼한 맛이 있고, 참외를 서리하고, 익어가는 곡식을 훔쳐 불에 그슬려 먹었던 건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추억이었던 것 같다. 

 금오도에 대한 에세이는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냈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금오도 비렁길을 걷고 있었다. 감꽃을 엮어 목에 걸고, 해안선을 따라 보들 바다를 눈이 시리도록 담아내어 그 바다 위 대부산 자락 단애가 이루어진 신선대의 울창한 숲길을 같이 걷는 상상을 해본다. 입가에 옅게 번진 미소는 물론 덤이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 찝찔한 바닷바람, 두려울 만큼 깊고 푸른 바다. 어릴 적 나에게 바다는 슬픔이고 원망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을 추스르고 현실 도피를 하고 싶을 땐, 바다가 가까운 여행지를 찾아든다. 위안받은 그곳에서 너른 가슴을 쓰다듬으며, 내일을 위한 다짐을 한다. 금오도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한다는 건 아직도 철들지 못하는 철들고 싶어 하지 않은 우리들의 마지막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황량함에 한술 달큼한 추억을 떠먹이고 스며들어 보자. 우리는 모두 다 추억을 먹고 사는 인생인 것을.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저는 잠시 다니러 오신 엄마가 노을 물든 샘가에서
내일 모레 고패(글피)에 다시 온다는 말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분명 손가락을 접어주며 말했는데 이해하지 못하고
그때 부도 하늘처럼 붉어지는 날이면 엄마가 올 거라고
자주 하늘빛을 살피곤 했지요.
그래서 내 아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떼놓고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만들어진 슬픔의 근육으로
글을 쓰고 글을 좋아하고 있네요.
사실적 묘사만으로 제 가슴을 관통해
이 아침을 글썽이게 하는 님의 글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반짝이는 유년을 간직한 것 같네요.
금오열도가, 금오도 에세이가 갑자기 더 보배롭습니다.
좋은 글 만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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