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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금오도>가 선물한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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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엄희준 조회 853회 작성일 23-11-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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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오도' 라는 아리따운 섬에

잠시 행복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미 그 곳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요즘 세대는 이것을 '기억조작' 이라 부른다.

나는 그곳에 없는데, 분명 그곳에 내가 실재한 기분.

덕분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유년기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부모님은 늘 맞벌이로 바쁘셨다.

내겐 오빠가 한 명 있는데, 당시 부모님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남매를 둘 다 키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맡겨져 자랐다.


할아버지는 여수로 출장을 자주 다녀오셨다.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꼭 고등어를 사오시곤 했다.

여수를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여수에서 잡은 '고등어' 만큼 맛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밥상머리에서, 잘못한 일에 꾸중을 들을때도,

젓가락으로 축 늘어져있는 고등어의 배를

살살 갈라 헤집어놓은 다음, 입에 쏙 넣으면,

입안 가득 사르르 퍼지는 고소하고 담백한 살코기의 풍미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럴땐 늘 밥을 두공기씩 먹곤 했다.

내가 열일곱이 됐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때 먹었던 그 고등어맛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할아버지께서

손주를 생각해서 먼 곳에서부터 고등어를 사오셨던 정성,

손수 발라주시고, 가장 맛있는 부위만 넘겨주시던

희생과 사랑이 더해진 맛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여수에 아는 지인분도 많이 계셨다.

그래서 항상 여수에 다녀오시면 친구를 만났던 얘기,

그 분들과 낚시했던 얘기를 종종 하시곤 했다.

읽는 내내, 할아버지가 그 곳을 사랑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어서 애틋했다.


만약 지금 할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나는 할아버지께 이 책을 꼭 선물해드렸을거다.



금오도는 내게 소중한 시간여행을 선물했다.

바쁜 일상에 치여,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살았다.

그때의 기억과,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던 감정들.

돌아보면 할아버지와 함께 한, 그때만큼

순수하고 행복한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게 작은 소망이 하나 생겼다.

'어드미' 에 가서, 봉우리 바위 위에 올라

한 눈에 들어오는 금오도의 경관을

제대로 느껴보는 것이다.

금오도는 아마 그곳에 살았던 분들의

추억과 숨결을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걸 지켜봐왔기 때문에.

그것이 이 책에서 어떤 후배가 선배에게

이 글은 '동화에서나 나오는 글' 이라고

부정해도 소용없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추억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그것은 단지 나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층 더 풍요로워질 뿐이다.

그래서, 나도 그 여행에 함께 동행해

그들의 추억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나이, 성별,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고향', '향수' 를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 역시 조금 더 성장해 나이가 들면,

내 고향에 대한 기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추억을 나누고 싶다.


우린 이렇게 '멋진 곳' 에 살았고,

지금도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아오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아주 잘 살아낼 것이라고.

서로 위로받고 다짐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큰 위안과 힘이 될 것이다.

'고향' 이란,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것처럼

지치고 힘들 때 , 무언가 꽉 막힌 벽을 만났을때

그리고 주기적으로 꼭 돌봐주어야 하는 자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고향인 '금오도', 그것을 공통 키워드로

각자 저마다의 색깔로, 자신만의 기억상자에서

하나하나 풀어낸 사연이 그래서 더욱 더 아름답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

그 세계가 만약, 함께 경험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그 세계는

더욱 확장되며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금오도' 의 책에 여러 사연들이 내 마음을 울리고,

또 다른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실제로 '여행해야겠다' 결심하게 만드는,

행동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실제로 경험하며,




잠시 쉬어가는 마음으로 온전히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더 ㅁ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엄희준</span>님의 댓글

엄희준 작성일

엄희준, 1996년생입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아, 그것을 [기억조작]이라고 하는군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폭풍 성장을 했을까요?
남다른 삶이 멋진 필력을 키우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많은 길이 사라지면서
우리가 알던 자리도 많이 지워졌습니다.
추억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더라도
많은 분들이 풀어주신 다양한 이야기를
이해하셨다면 50프로 정도는
금오도를 다녀오신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날 꼭 그곳에 올라
나머지도 채워가시길 바랍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늘 건 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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