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도>가 선물한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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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엄희준 조회 316회 작성일 23-11-07 08:35본문
나는 '금오도' 라는 아리따운 섬에
잠시 행복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미 그 곳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요즘 세대는 이것을 '기억조작' 이라 부른다.
나는 그곳에 없는데, 분명 그곳에 내가 실재한 기분.
덕분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유년기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부모님은 늘 맞벌이로 바쁘셨다.
내겐 오빠가 한 명 있는데, 당시 부모님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남매를 둘 다 키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맡겨져 자랐다.
할아버지는 여수로 출장을 자주 다녀오셨다.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꼭 고등어를 사오시곤 했다.
여수를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여수에서 잡은 '고등어' 만큼 맛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밥상머리에서, 잘못한 일에 꾸중을 들을때도,
젓가락으로 축 늘어져있는 고등어의 배를
살살 갈라 헤집어놓은 다음, 입에 쏙 넣으면,
입안 가득 사르르 퍼지는 고소하고 담백한 살코기의 풍미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럴땐 늘 밥을 두공기씩 먹곤 했다.
내가 열일곱이 됐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때 먹었던 그 고등어맛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할아버지께서
손주를 생각해서 먼 곳에서부터 고등어를 사오셨던 정성,
손수 발라주시고, 가장 맛있는 부위만 넘겨주시던
희생과 사랑이 더해진 맛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여수에 아는 지인분도 많이 계셨다.
그래서 항상 여수에 다녀오시면 친구를 만났던 얘기,
그 분들과 낚시했던 얘기를 종종 하시곤 했다.
읽는 내내, 할아버지가 그 곳을 사랑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어서 애틋했다.
만약 지금 할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나는 할아버지께 이 책을 꼭 선물해드렸을거다.
금오도는 내게 소중한 시간여행을 선물했다.
바쁜 일상에 치여,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살았다.
그때의 기억과,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던 감정들.
돌아보면 할아버지와 함께 한, 그때만큼
순수하고 행복한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게 작은 소망이 하나 생겼다.
'어드미' 에 가서, 봉우리 바위 위에 올라
한 눈에 들어오는 금오도의 경관을
제대로 느껴보는 것이다.
금오도는 아마 그곳에 살았던 분들의
추억과 숨결을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걸 지켜봐왔기 때문에.
그것이 이 책에서 어떤 후배가 선배에게
이 글은 '동화에서나 나오는 글' 이라고
부정해도 소용없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추억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그것은 단지 나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층 더 풍요로워질 뿐이다.
그래서, 나도 그 여행에 함께 동행해
그들의 추억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나이, 성별,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고향', '향수' 를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 역시 조금 더 성장해 나이가 들면,
내 고향에 대한 기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추억을 나누고 싶다.
우린 이렇게 '멋진 곳' 에 살았고,
지금도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아오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아주 잘 살아낼 것이라고.
서로 위로받고 다짐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큰 위안과 힘이 될 것이다.
'고향' 이란,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것처럼
지치고 힘들 때 , 무언가 꽉 막힌 벽을 만났을때
그리고 주기적으로 꼭 돌봐주어야 하는 자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고향인 '금오도', 그것을 공통 키워드로
각자 저마다의 색깔로, 자신만의 기억상자에서
하나하나 풀어낸 사연이 그래서 더욱 더 아름답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
그 세계가 만약, 함께 경험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그 세계는
더욱 확장되며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금오도' 의 책에 여러 사연들이 내 마음을 울리고,
또 다른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실제로 '여행해야겠다' 결심하게 만드는,
행동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실제로 경험하며,
잠시 쉬어가는 마음으로 온전히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더 ㅁ